다양한 용술관과 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관련 보도자료를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총본부 용술관 보도자료

네덜란드 합기도관장 프란츠(Frans Drenth) 방문기

작성자
합기유술총본부
작성일
2022-09-05 15:06
조회
72
2003년초, 프란츠란 한 외국인이 용술관에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신을 합기도 15년을 수련하고 아이기도 5년을 수련한 40대중반의 관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도장과 관원사진을 함께 보내왔지요.

프란츠 도장 전경 및 관원들



그는 인터넷에 올라있는 용술관 자료에 대해 깊은 흥미를 보이면서 한국에 아직도 최용술도주님의 술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곳이 있는냐며 반문하고 시간이 나면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사실 그런 내용을 보내온 사람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올지는 몰랐지요.

몇 번의 메일왕래를 통하여 그는 일주일간 용술관 방문을 결정하였고 그후에 5월초 방문키로하고 비행기 티케팅을 하였다며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그후..., 몇 개월이 흐른 후 그는 5.3 토요일 오전 에어프랑스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190cm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아저씨였죠. 짧은 영어로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제 차에 태운 후 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프랑스파리에서 12시간동안 비행기를 탔다는데 한숨도 못잤다고해서 가자마자 술기해야하니 좀 자라고해도 한국이 신기하다며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더군여.

한국특유의 교통지옥이 고속도로까지 그대로 이어져 6시간후에야 금산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전용차선을 들락날락거렸는데도 무지 막혔습니다. 프란츠는 유럽에서는 15분이상 막힌적이 없었다며 무척 놀라더군여^^

금산에 도착하니 도주님 이하 관장님들과 사범님, 그리고 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지 많이 기다리셨을 겁니다.^^)

프란츠는 최용술도주님 영정에 큰절을 올리고 김윤산도주님을 뵙고 큰절을 드렸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간단한 소개를 한다음 바로 술기지도에 들어갔습니다.

우린 서양인의 엄청난 힘에 놀랐고 그 또한 힘을 사용치않는 용술관의 술기에 놀랐습니다.

수련을 마칠 무렵..., 김윤상도주님의 시연이 시작되자 프란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손을 사용치 않으신 합기투를 보여주셨거든요. 저도 신기한 술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용술관서 1년째 수련중인 호주태생 제랄드의 통역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술기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프란츠에게 확정된 수련 스케쥴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루 세 번 수련 원칙을 알려주었더니 힘들겠지만 일주일간 함 해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더군요.

내일 오전 수련은 5시반이라고 알려주었더니 그의 얼굴에서는 야릇한 표정이^^

하여간 그친구는 금산 용술관 근처에 한 모텔에 숙소를 잡고 자국에서 출발한지 하루가 지나서야 잠을 자게되었습니다.

금산 수련 후 단체사진

그는 다음날 5.4 오전 수련을 마친 후 도주님과 용술관 관장님들과 함께 대구 칠곡에 위치한 최용술도주님 묘소를 참배하고 왔습니다. 합기도창시자 묘소참배는 그가 예전부터 꿈꾸어왔던거고 강력하게 희망하여 다녀왔습니다.


최용술도주님 묘비명 뒷편을 설명하시는 김윤상 도주님

하여간 주말에다 연휴가 많이 꼈는데 도주님과 용술관 관장님들 프란츠 챙기느라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참배를 하러갔지만 그곳에서도 틈틈이 술기를 수련하였다는 후문이...,

도주님의 2인 굳히기

그는 매일 낮수련은 제랄드와 함께 대전으로 와서 용문동 대전본부도장, 판암도장, 산성도장에서 수련하면서 대전소재 각 관장님들과 우의를 쌓고 빡센 수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

프란츠 대전 판암도장 방문

5월 7일 오후에 용문도장에 한 20명이 넘게 모여 수련의 열기를 덥히고 있는 중에 김윤상도주님의 칠순잔치에 초대되었다는

기쁜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갑자기 결정된 것이라 그날 수련에 함께하신분들 위주로 참석을 하게되었습니다.

유성 스파텔에서 거행된 칠순잔치는 도주님의 직계가족분들께서 마련하신 자리였지만 제자들 또한 불러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용술관은 한가족이라는 말이 새삼^^

손주의 축하를 받는 도주님도주님 칠순기념 촬영칠순잔치에서 도주님과 함께한 프란츠

뷔페식사가 끝나고 프란츠는 생전처음이라는 가라오케기계앞에서서 축하송을 불러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털털한 성격답게 그는 호텔캘리포니아를 멋드러지게 불렀으며 그 옆에서 제랄드도 열심히 거들었지만..., 세상에 염불을^^



늦은 밤까지 금산 제랄드방에서 뒤척이다가 5월 8일 수련을 함께했습니다.

프란츠와 제랄드는 김윤상 도주님댁에 초대를 받아 최용술도주님관련 각종 자료와 사진, 그리고 2대/3대 도주증서를 보고 감탄

에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제랄드, 프란츠의 도주님댁 방문



그는 5월 10일까지 일주일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매일 3회의 강한 수련을 소화했으며 그 결과 도주님에게 용술관 명칭사용허가증과 일주일간 수련에 관한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그는 오후에 금산에서 도주님과 작별을 한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인천공항과 가까운 제 부모님에 방이 여유로운지라 거기에 짐을 풀고 저녁은 인사동으로 가서 서울수련모임사람들과 함께 스파게티로 식사를 해결하고(그는 일주일간 처음 먹어본 서양음식이라고^^) 경인미술관 찻집에가서 오미자차를 다 함께 마셨습니다.

한국 전통가옥은 무조건 셔터를 눌러대더군여^^(유럽이외는 가본적이 없다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서울수련생들과 함께

5월 11일 오전부터 서둘러서 인천공항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가족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많이 보고싶다고요.

술기배우러 한국간다고했을 때 모두들 말렸답니다. 특히 가족들이 그 먼나라까지 뭐하러 가냐고...,

같이 합기도를 하는 동생도 못가게 말렸답니다....,

그는 일주일간 용술관에서 수련하면서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기 일생에서 도주님과 용술관을 잊을 수 없을것이라고...,

9000km라는 여행이 만만치는 않지만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와서 관광도 좀 하고 싶다고 하며 비행장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긴긴 아쉬움만 남긴채 돌아왔습니다.







이후 이야기를 전해드리면 거의 매년 프란츠는 일주일간 금산에 방문하여 자신의 일년 휴가를 모두 사용하고 돌아갔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용술관 지관으로 체육관 운영 및 세미나를 여는 등 합기유술 전도자가 되어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초 암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3.28 저녁에 프란츠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프란츠는 독일, 벨기에, 이태리 등 유럽에 합기유술을 전파하는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가 없었으면 현재 용술관 합기유술이 유럽에 알려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역만리의 땅을 최용술도주님의 술기가 존재한다는 말만 믿고 9000km를 날아와 네덜란드에서 홀홀 단신 수련하러 매년 용술관에 방문, 수련했던 프란츠 관장, 지금도 저는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듬해 프란츠의 제자들이 최용술 도주님 추모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모습입니다.










edit : 서울역삼도장 관장 신 훈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

다양한 용술관과 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관련 보도자료를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총본부 용술관 보도자료

네덜란드 합기도관장 프란츠(Frans Drenth) 방문기

작성자
합기유술총본부
작성일
2022-09-05 15:06
조회
72
2003년초, 프란츠란 한 외국인이 용술관에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신을 합기도 15년을 수련하고 아이기도 5년을 수련한 40대중반의 관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도장과 관원사진을 함께 보내왔지요.

프란츠 도장 전경 및 관원들



그는 인터넷에 올라있는 용술관 자료에 대해 깊은 흥미를 보이면서 한국에 아직도 최용술도주님의 술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곳이 있는냐며 반문하고 시간이 나면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사실 그런 내용을 보내온 사람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올지는 몰랐지요.

몇 번의 메일왕래를 통하여 그는 일주일간 용술관 방문을 결정하였고 그후에 5월초 방문키로하고 비행기 티케팅을 하였다며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그후..., 몇 개월이 흐른 후 그는 5.3 토요일 오전 에어프랑스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190cm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아저씨였죠. 짧은 영어로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제 차에 태운 후 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프랑스파리에서 12시간동안 비행기를 탔다는데 한숨도 못잤다고해서 가자마자 술기해야하니 좀 자라고해도 한국이 신기하다며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더군여.

한국특유의 교통지옥이 고속도로까지 그대로 이어져 6시간후에야 금산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전용차선을 들락날락거렸는데도 무지 막혔습니다. 프란츠는 유럽에서는 15분이상 막힌적이 없었다며 무척 놀라더군여^^

금산에 도착하니 도주님 이하 관장님들과 사범님, 그리고 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지 많이 기다리셨을 겁니다.^^)

프란츠는 최용술도주님 영정에 큰절을 올리고 김윤산도주님을 뵙고 큰절을 드렸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간단한 소개를 한다음 바로 술기지도에 들어갔습니다.

우린 서양인의 엄청난 힘에 놀랐고 그 또한 힘을 사용치않는 용술관의 술기에 놀랐습니다.

수련을 마칠 무렵..., 김윤상도주님의 시연이 시작되자 프란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손을 사용치 않으신 합기투를 보여주셨거든요. 저도 신기한 술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용술관서 1년째 수련중인 호주태생 제랄드의 통역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술기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프란츠에게 확정된 수련 스케쥴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루 세 번 수련 원칙을 알려주었더니 힘들겠지만 일주일간 함 해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더군요.

내일 오전 수련은 5시반이라고 알려주었더니 그의 얼굴에서는 야릇한 표정이^^

하여간 그친구는 금산 용술관 근처에 한 모텔에 숙소를 잡고 자국에서 출발한지 하루가 지나서야 잠을 자게되었습니다.

금산 수련 후 단체사진

그는 다음날 5.4 오전 수련을 마친 후 도주님과 용술관 관장님들과 함께 대구 칠곡에 위치한 최용술도주님 묘소를 참배하고 왔습니다. 합기도창시자 묘소참배는 그가 예전부터 꿈꾸어왔던거고 강력하게 희망하여 다녀왔습니다.


최용술도주님 묘비명 뒷편을 설명하시는 김윤상 도주님

하여간 주말에다 연휴가 많이 꼈는데 도주님과 용술관 관장님들 프란츠 챙기느라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참배를 하러갔지만 그곳에서도 틈틈이 술기를 수련하였다는 후문이...,

도주님의 2인 굳히기

그는 매일 낮수련은 제랄드와 함께 대전으로 와서 용문동 대전본부도장, 판암도장, 산성도장에서 수련하면서 대전소재 각 관장님들과 우의를 쌓고 빡센 수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

프란츠 대전 판암도장 방문

5월 7일 오후에 용문도장에 한 20명이 넘게 모여 수련의 열기를 덥히고 있는 중에 김윤상도주님의 칠순잔치에 초대되었다는

기쁜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갑자기 결정된 것이라 그날 수련에 함께하신분들 위주로 참석을 하게되었습니다.

유성 스파텔에서 거행된 칠순잔치는 도주님의 직계가족분들께서 마련하신 자리였지만 제자들 또한 불러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용술관은 한가족이라는 말이 새삼^^

손주의 축하를 받는 도주님도주님 칠순기념 촬영칠순잔치에서 도주님과 함께한 프란츠

뷔페식사가 끝나고 프란츠는 생전처음이라는 가라오케기계앞에서서 축하송을 불러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털털한 성격답게 그는 호텔캘리포니아를 멋드러지게 불렀으며 그 옆에서 제랄드도 열심히 거들었지만..., 세상에 염불을^^



늦은 밤까지 금산 제랄드방에서 뒤척이다가 5월 8일 수련을 함께했습니다.

프란츠와 제랄드는 김윤상 도주님댁에 초대를 받아 최용술도주님관련 각종 자료와 사진, 그리고 2대/3대 도주증서를 보고 감탄

에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제랄드, 프란츠의 도주님댁 방문



그는 5월 10일까지 일주일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매일 3회의 강한 수련을 소화했으며 그 결과 도주님에게 용술관 명칭사용허가증과 일주일간 수련에 관한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그는 오후에 금산에서 도주님과 작별을 한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인천공항과 가까운 제 부모님에 방이 여유로운지라 거기에 짐을 풀고 저녁은 인사동으로 가서 서울수련모임사람들과 함께 스파게티로 식사를 해결하고(그는 일주일간 처음 먹어본 서양음식이라고^^) 경인미술관 찻집에가서 오미자차를 다 함께 마셨습니다.

한국 전통가옥은 무조건 셔터를 눌러대더군여^^(유럽이외는 가본적이 없다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서울수련생들과 함께

5월 11일 오전부터 서둘러서 인천공항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가족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많이 보고싶다고요.

술기배우러 한국간다고했을 때 모두들 말렸답니다. 특히 가족들이 그 먼나라까지 뭐하러 가냐고...,

같이 합기도를 하는 동생도 못가게 말렸답니다....,

그는 일주일간 용술관에서 수련하면서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기 일생에서 도주님과 용술관을 잊을 수 없을것이라고...,

9000km라는 여행이 만만치는 않지만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와서 관광도 좀 하고 싶다고 하며 비행장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긴긴 아쉬움만 남긴채 돌아왔습니다.







이후 이야기를 전해드리면 거의 매년 프란츠는 일주일간 금산에 방문하여 자신의 일년 휴가를 모두 사용하고 돌아갔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용술관 지관으로 체육관 운영 및 세미나를 여는 등 합기유술 전도자가 되어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초 암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3.28 저녁에 프란츠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프란츠는 독일, 벨기에, 이태리 등 유럽에 합기유술을 전파하는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가 없었으면 현재 용술관 합기유술이 유럽에 알려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역만리의 땅을 최용술도주님의 술기가 존재한다는 말만 믿고 9000km를 날아와 네덜란드에서 홀홀 단신 수련하러 매년 용술관에 방문, 수련했던 프란츠 관장, 지금도 저는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듬해 프란츠의 제자들이 최용술 도주님 추모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모습입니다.










edit : 서울역삼도장 관장 신 훈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