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용술관과 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관련 보도자료를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총본부 용술관 보도자료

용술관 김윤상 총재, 호주 방문 세미나 발행일자 : 2003-12-11 00:00:00 김윤상 총재의 첫번째 해외 세미나 한국 합기도의 뿌리인 최용술 선생의 기술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용술관의 김윤상 총재가 지난 10월12일부터 25일까지 2주일에 걸쳐 호주를 방문, 시드니, 리즈모어, 브리스베인등을 순회하며 세미나를 개최하고 돌아왔다. 이번 세미나는 호주합기도협회(http://www.australianhapkido.com)의 초청으로 이루어 졌으며, 합기도를 수련하는 사람뿐 아니라, 검도, 아이기도, 쿵푸 등 다양한 무술의 수련인들이 매회 50여명 이상 꾸준히 참가하여 호주 무술인들의 관심과 열의를 알 수 있었다.     2주간 내내, 김윤상 총재는 최용술선생으로부터 전해받은 기술을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단순한 흥미로, 때로는 의구심으로 다가오는 호주의 무술인들의 손목을 직접 잡아가며, 그들에게 최용술 선생의 ‘합기유술’을 전해주었다. 그리 길지않은 여정 탓에 보통 2,3시간씩 걸리는 세미나가 하루 3차례씩, 거의 매일 같이 진행이 되었으며, 나이 일흔이 넘은 김윤상 총재의 지치지 않는 모습에 한국에서 따라간 제자들은 물론이고, 호주의 무술인들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윤상 총재가 보여준 세미나의 내용은 참가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그 중 제이슨 워더스푼(http://www.aikidoaus.com.au/dojo/docs/jasonbio.htm)이라는 아이기도 유단자는 유명한 아이기도 웹진인 아이기도 저널(www.aikidojounal.com)에 세미나의 내용을 상세하게 올려 자신이 받은 감동을 표현했다. 제이슨 워더스푼은 잎스위치 아이기도 클럽(Ipswich Aikido Club)에서 지도하고 있으며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내제자로 유명한 사이토 모리히로계열의 도장(http://www.aikidoaus.com.au)에서 수련했다고 한다.   다음은 제이슨 워더스푼[아이기도 경력14년, 이와마류 아이기도3단, Iwama 스타일 Takemusu Aiki 협회 Ipswich Aikido Club 도장장]이 쓴...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1971년 9월 잡지 합기도 제3호) 지금 남한 전역 방방곡곡에는 수많은 합기도장이 있다. 도시의 골목골목에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심지어는 농어촌에도 혹은 외딴섬에도 합기도 도장의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나는 그들 간판을 보고 그들의 기합소리를 들을 때한편으로는 마음 흐믓하기도 하고 하지만 또한편 그들의 동작(술기)을 살필때마다 서글픈 심경을 누를길이 없다. 나는 이 땅에 합기도를 심은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기합소리와 그들의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모두 내손길의 연장인 것이다. 물론 현재 수련장에 있는 사람들중에서도 아직 내얼굴 한 번조차 못본 사람이 허다할 것이지만 그들의 사범 혹은 그들의 관장 혹은 그 관장의 스승은 분명 나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서글픈 심정에 사로 잡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들의 술기에서 내가 가르쳤던 합기도를 찾아내기란 너무도 어렵도록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이것을 가르쳤는데 지금의 이들은 엉뚱하게도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 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원리에서 벗어난 임기응변적인 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나의 불찰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합기도 관장들중에서 그래도 나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사람들에게만은 내가 꼭 해야할 한마디 말이 있다. "너희들은 너무 컷고 또 일찍 자만심에 젖어버렸다" 얼핏 모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나에겐 너희에게 전할 술기가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아니 반듯이 전해준 다음에야 이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왜 기를 쓰고 다른길을 걸으며 방황하고 있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습니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합기도와 아이키도는 아주 딴판이죠." 대한민국덕암류합기유술총본부 김윤상 도주 최용술 도주의 합기도를 잇고 있는 김윤상 3대도주는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에 은거하고 있다. 1934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8세지만 아직도 사범을 따로 두지 않고 직접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도장 이름은 스승의 이름을 딴 용술관이다. ■ 정부에서 합기도를 외래무예로 분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선생님이 일본에서 (배워)오셨으니 외래무예라고 해도 제가 할 말은 없죠.” 담백한 대답이다. 뭐라고 덧붙일 법도 한데 그걸로 그만이다. ■ 최용술 도주가 정말 일본에서 다케다 스승에게 배웠느냐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  “그걸 증명할 게 없어요. 애초에 제대로 된 문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해방 후에 고향인 충북 황간으로 가려다 그나마  있던 짐마저 모두 잃어버렸으니.. 그 바람에 대구에 주저앉았어요. 선생님이 돌아가기 직전에 병석에서 다케다 선생을 보고 싶다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학대받으셨는데 그분이 보고 싶으십니까?’ 하니 선생님 왈, ‘그분만 보고 싶다.’고 하십디다.” 최용술 도주는 일본에서 수년간 입산수련할 당시, 스승인 다케다 쇼가쿠로부터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다. “부엉이같이 생긴 다케다 선생이 너무 보기 싫어서 잠을 잘 때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숱하게 느꼈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 도주는 거친 학대 속에 사제의 정이 짙게 흐르고 있었음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느꼈던 모양이다. 다케다는 유술(柔術)은 물론 검(劍)에서도 대가였다. 그는 최 도주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본에서 검술은 내가 최고요, 맨손 기술은 네가 으뜸이다.” 그런데 최용술은 임종을 앞둔...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최용술 선생 영명록 발견, 일본서 배운 건 사실이다 기사입력: 2018/10/15 [22:44] ㅣ ©무예신문   필자는 수미노사토시(住野聡) 한국명 성도원(誠道苑)이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선문대학교 무도학과를 졸업한 후, 용인대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사논문에서 발표하겠지만, 박사논문을 위해 조사했던 일부내용을 대한민국 무예계를 대표하는 무예신문에 일부를 먼저 발표한다.   한국에서 무예를 공부하다 보니 한국 합기도는 최용술 선생이 타게다 소우가쿠로 부터 직접 술기를 배워온 것으로 발표됐지만 영명록이 발견되지 않은 관계로 이에 대한 설이 분분했다. 이에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하고 수년 동안 영명록 추적에 나섰다.   지난 9월 21일 필자는 일본 동경에 있는 다이토우류아이키주찌츠(大東流合氣柔術:대동류합기유술) 본부도장에 갔다. 목적은 한국 합기도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최용술(崔龍述:1899~1986) 선생에 관한 연구조사를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최용술 선생은 대동류의 타케다 소우카쿠(武田惣角)한테서 무술을 배웠다고 주장해왔는데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증거라는 영명록(英名錄)이다.    ©무예신문   이것은 타케다 소우카쿠가 언제 누구한테 무술지도를 받았는지 세밀히 기록한 자료다. 사실 영명록은 여러 종류가 있다. 타케다 소우카쿠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영명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타케 다소우카쿠의 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도 영명록 이름을 사용해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케다 소우카쿠에 영명록이다. 최용술 선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름은 거기에 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났던 사람은 종가대리(宗家代理)로서 활동해 왔던 콘도카츠유키(近藤勝之)본부장이다. 그분은 실제적인 제3대의 후계자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타케다 소우카쿠의 영명록과 기타자료들도 보관하고 있다. 필자는 그분과의 여러...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41701031633006002 게재 일자 : 2004년 04월 17일(土) 무술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는 뭘까. 적지 않은 이들이 아마도 도복과 블랙벨트를 꼽을 것 같다. 도복에 흥건히 배어오는 땀, 그 퀴퀴한 냄새가 그저 좋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흰 띠 매고 시작해 검은 띠 따고, 그 검은 띠도 수련세월이 흘러 색 바래고 해져 흰 띠처럼 돌아가고…. 그런데 고단자들일수록 이런 향수에만 푹 젖어서는 수련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목에 힘이 들어가고부터는 ‘내가 어떻게 ‘아랫것들(?)’과 몸 부대끼며 운동할 수 있겠느냐’는 심사가 되는 것이다. 도장 관장쯤 되는 이에게는 너무나 일반적인 일일 게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고희가 지난 나이에도 새벽, 저녁으로 하는 하루 2번의 수련을 거른 적이 없다. 알고보니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는데…. 충남 금산의 ‘용술관(龍術館)’. 한국합기유술 총본부 도장으로 아주 이름난 곳이다. 여기서 합기도 창시자 고(故) 최용술 도주의 고제(高弟) 김윤상(71) 총재가 30여년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합기유술 3대 도주이기도 한 김 총재는 지난 84년 최 도주로부터 합기유술 9단을 받았다. 용술관은 물론 최 도주의 이름을 딴 도장명이다. 나이 40에 도주로부터 무술을 배운 늑깎이 무술인. 그러나 워낙 열심히 배운 터라 현재 최 도주의 술기를 가장 잘 이어받은 전인으로 평가받는다. 홀쭉한 체구에 찬찬한 말투의 그는 흔히 이웃에서 볼 수 있는 할아버지로밖에 안보인다. 그런데 그에겐 엄청난 무술이 숨겨져 있었다. 최 도주는 총재에게 새로운 무술의 세계를 보여줬다. 손만 얽었다...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2010/11/03 http://www.mooye.net/3164 ▲ 국민생활체육충남합기도연합회 (회장 정달순) 합기도는 핵심술기의 원형을 보존하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러나 변형과 변화, 발전만을 치중한 나머지 보존은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충청남도 금산에 최용술 도주의 합기도 원형술기를 보존하고 후대로 계승하기 위해 도주의 이름을 따 지은 ‘용술관’을 개관하여 최용술 도주가 제1대, 최복열(최용술 도주 아들) 도주가 제2대, 김윤상 도주가 제3대를 맡으며 현재까지 그 계보를 이어오면서 원형술기를 보존하고 전수·계승하고 있다. 합기도는 계보를 따르는 역사성과 정통 핵심술기를 전수하는 가운데 술기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즉, 합기도의 원형보존과 발전이 전제조건으로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의미로 합기도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용술 도주가 만든 원형술기의 구조를 보면 현재 재정립된 술기구조와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볼 수 있다. 현재의 술기가 분명 현대화·체계화되었으나 원형술기에 비해 잘 풀리지 않는 수가 너무 많다. 한 예로 던지기 기법을 살펴보면 합기도 고유의 던지기가 아닌 유도의 던지기 기술이 도입되어, 유도를 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합기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명백한 발전의 오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합기도는 대한체육회 가맹과 함께 합기도의 계보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합기도를 바로 세우고 원로 분들을 선배로써 깍듯이 대우하기 위해 ○○특별위원회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합기도 계보를 바로 잡고 합기도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사람을 공개 토론을 통해 검증하여 옥석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시기가 아주 적절하다. 대의명분도 충분하다. 이제 합기도의...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고수를 찾아서 <24>김윤상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 도주 "죽을 때가 돼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 무술" 해방 뒤 우리나라 합기도 개척한 최용술 도주 수제자 고희 넘긴 나이에도 도복 벗지 않고 영원한 현역 고집 "싸우지 않고 상대방 이기는 방법 알아야 진짜 무도인"https://youtu.be/k8D08ekrELU 최용술(1899~198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홉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절에서 살다 근대 일본 유술의 최고수라 일컬어지는 다케다 소가쿠라는 무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서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운다. 다케다는 최용술에게 "합기유술은 원래 신라시대 때 화랑인 삼랑 원의광이 도일하면서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그런 만큼 너는 너희 나라로 가서 이 술기를 전파시켜라"는 부탁을 한다. 해방 이후 귀국한 최용술은 대한합기유권술 도장을 열고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나선다. 그의 무술은 놀라운 것이었다. 어떤 상대도 대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이라도 최용술의 손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했다. 쓰러진 상대방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시범을 선보이는 김윤상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 도주.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몸놀림이 빨랐다. 서순룡 기자 seosy@kookje.co.kr· 최용술은 사실상 우리나라 합기도의 창시자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실력에 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스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데다 그에게서 술기를 배운 제자들도 철저하게 외면했다. 넘기 어려운 거대한 산이었던 최용술. 그가 있는 한 제자들은 감히 자신이 최고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최용술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하기 시작한다. 한국과 일본의 무술사학자들에 의해서다....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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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총본부 용술관 보도자료

용술관 김윤상 총재, 호주 방문 세미나 발행일자 : 2003-12-11 00:00:00 김윤상 총재의 첫번째 해외 세미나 한국 합기도의 뿌리인 최용술 선생의 기술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용술관의 김윤상 총재가 지난 10월12일부터 25일까지 2주일에 걸쳐 호주를 방문, 시드니, 리즈모어, 브리스베인등을 순회하며 세미나를 개최하고 돌아왔다. 이번 세미나는 호주합기도협회(http://www.australianhapkido.com)의 초청으로 이루어 졌으며, 합기도를 수련하는 사람뿐 아니라, 검도, 아이기도, 쿵푸 등 다양한 무술의 수련인들이 매회 50여명 이상 꾸준히 참가하여 호주 무술인들의 관심과 열의를 알 수 있었다.     2주간 내내, 김윤상 총재는 최용술선생으로부터 전해받은 기술을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단순한 흥미로, 때로는 의구심으로 다가오는 호주의 무술인들의 손목을 직접 잡아가며, 그들에게 최용술 선생의 ‘합기유술’을 전해주었다. 그리 길지않은 여정 탓에 보통 2,3시간씩 걸리는 세미나가 하루 3차례씩, 거의 매일 같이 진행이 되었으며, 나이 일흔이 넘은 김윤상 총재의 지치지 않는 모습에 한국에서 따라간 제자들은 물론이고, 호주의 무술인들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윤상 총재가 보여준 세미나의 내용은 참가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그 중 제이슨 워더스푼(http://www.aikidoaus.com.au/dojo/docs/jasonbio.htm)이라는 아이기도 유단자는 유명한 아이기도 웹진인 아이기도 저널(www.aikidojounal.com)에 세미나의 내용을 상세하게 올려 자신이 받은 감동을 표현했다. 제이슨 워더스푼은 잎스위치 아이기도 클럽(Ipswich Aikido Club)에서 지도하고 있으며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내제자로 유명한 사이토 모리히로계열의 도장(http://www.aikidoaus.com.au)에서 수련했다고 한다.   다음은 제이슨 워더스푼[아이기도 경력14년, 이와마류 아이기도3단, Iwama 스타일 Takemusu Aiki 협회 Ipswich Aikido Club 도장장]이 쓴...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1971년 9월 잡지 합기도 제3호) 지금 남한 전역 방방곡곡에는 수많은 합기도장이 있다. 도시의 골목골목에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심지어는 농어촌에도 혹은 외딴섬에도 합기도 도장의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나는 그들 간판을 보고 그들의 기합소리를 들을 때한편으로는 마음 흐믓하기도 하고 하지만 또한편 그들의 동작(술기)을 살필때마다 서글픈 심경을 누를길이 없다. 나는 이 땅에 합기도를 심은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기합소리와 그들의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모두 내손길의 연장인 것이다. 물론 현재 수련장에 있는 사람들중에서도 아직 내얼굴 한 번조차 못본 사람이 허다할 것이지만 그들의 사범 혹은 그들의 관장 혹은 그 관장의 스승은 분명 나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서글픈 심정에 사로 잡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들의 술기에서 내가 가르쳤던 합기도를 찾아내기란 너무도 어렵도록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이것을 가르쳤는데 지금의 이들은 엉뚱하게도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 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원리에서 벗어난 임기응변적인 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나의 불찰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합기도 관장들중에서 그래도 나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사람들에게만은 내가 꼭 해야할 한마디 말이 있다. "너희들은 너무 컷고 또 일찍 자만심에 젖어버렸다" 얼핏 모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나에겐 너희에게 전할 술기가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아니 반듯이 전해준 다음에야 이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왜 기를 쓰고 다른길을 걸으며 방황하고 있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습니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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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와 아이키도는 아주 딴판이죠." 대한민국덕암류합기유술총본부 김윤상 도주 최용술 도주의 합기도를 잇고 있는 김윤상 3대도주는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에 은거하고 있다. 1934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8세지만 아직도 사범을 따로 두지 않고 직접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도장 이름은 스승의 이름을 딴 용술관이다. ■ 정부에서 합기도를 외래무예로 분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선생님이 일본에서 (배워)오셨으니 외래무예라고 해도 제가 할 말은 없죠.” 담백한 대답이다. 뭐라고 덧붙일 법도 한데 그걸로 그만이다. ■ 최용술 도주가 정말 일본에서 다케다 스승에게 배웠느냐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  “그걸 증명할 게 없어요. 애초에 제대로 된 문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해방 후에 고향인 충북 황간으로 가려다 그나마  있던 짐마저 모두 잃어버렸으니.. 그 바람에 대구에 주저앉았어요. 선생님이 돌아가기 직전에 병석에서 다케다 선생을 보고 싶다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학대받으셨는데 그분이 보고 싶으십니까?’ 하니 선생님 왈, ‘그분만 보고 싶다.’고 하십디다.” 최용술 도주는 일본에서 수년간 입산수련할 당시, 스승인 다케다 쇼가쿠로부터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다. “부엉이같이 생긴 다케다 선생이 너무 보기 싫어서 잠을 잘 때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숱하게 느꼈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 도주는 거친 학대 속에 사제의 정이 짙게 흐르고 있었음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느꼈던 모양이다. 다케다는 유술(柔術)은 물론 검(劍)에서도 대가였다. 그는 최 도주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본에서 검술은 내가 최고요, 맨손 기술은 네가 으뜸이다.” 그런데 최용술은 임종을 앞둔...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최용술 선생 영명록 발견, 일본서 배운 건 사실이다 기사입력: 2018/10/15 [22:44] ㅣ ©무예신문   필자는 수미노사토시(住野聡) 한국명 성도원(誠道苑)이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선문대학교 무도학과를 졸업한 후, 용인대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사논문에서 발표하겠지만, 박사논문을 위해 조사했던 일부내용을 대한민국 무예계를 대표하는 무예신문에 일부를 먼저 발표한다.   한국에서 무예를 공부하다 보니 한국 합기도는 최용술 선생이 타게다 소우가쿠로 부터 직접 술기를 배워온 것으로 발표됐지만 영명록이 발견되지 않은 관계로 이에 대한 설이 분분했다. 이에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하고 수년 동안 영명록 추적에 나섰다.   지난 9월 21일 필자는 일본 동경에 있는 다이토우류아이키주찌츠(大東流合氣柔術:대동류합기유술) 본부도장에 갔다. 목적은 한국 합기도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최용술(崔龍述:1899~1986) 선생에 관한 연구조사를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최용술 선생은 대동류의 타케다 소우카쿠(武田惣角)한테서 무술을 배웠다고 주장해왔는데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증거라는 영명록(英名錄)이다.    ©무예신문   이것은 타케다 소우카쿠가 언제 누구한테 무술지도를 받았는지 세밀히 기록한 자료다. 사실 영명록은 여러 종류가 있다. 타케다 소우카쿠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영명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타케 다소우카쿠의 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도 영명록 이름을 사용해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케다 소우카쿠에 영명록이다. 최용술 선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름은 거기에 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났던 사람은 종가대리(宗家代理)로서 활동해 왔던 콘도카츠유키(近藤勝之)본부장이다. 그분은 실제적인 제3대의 후계자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타케다 소우카쿠의 영명록과 기타자료들도 보관하고 있다. 필자는 그분과의 여러...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41701031633006002 게재 일자 : 2004년 04월 17일(土) 무술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는 뭘까. 적지 않은 이들이 아마도 도복과 블랙벨트를 꼽을 것 같다. 도복에 흥건히 배어오는 땀, 그 퀴퀴한 냄새가 그저 좋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흰 띠 매고 시작해 검은 띠 따고, 그 검은 띠도 수련세월이 흘러 색 바래고 해져 흰 띠처럼 돌아가고…. 그런데 고단자들일수록 이런 향수에만 푹 젖어서는 수련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목에 힘이 들어가고부터는 ‘내가 어떻게 ‘아랫것들(?)’과 몸 부대끼며 운동할 수 있겠느냐’는 심사가 되는 것이다. 도장 관장쯤 되는 이에게는 너무나 일반적인 일일 게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고희가 지난 나이에도 새벽, 저녁으로 하는 하루 2번의 수련을 거른 적이 없다. 알고보니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는데…. 충남 금산의 ‘용술관(龍術館)’. 한국합기유술 총본부 도장으로 아주 이름난 곳이다. 여기서 합기도 창시자 고(故) 최용술 도주의 고제(高弟) 김윤상(71) 총재가 30여년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합기유술 3대 도주이기도 한 김 총재는 지난 84년 최 도주로부터 합기유술 9단을 받았다. 용술관은 물론 최 도주의 이름을 딴 도장명이다. 나이 40에 도주로부터 무술을 배운 늑깎이 무술인. 그러나 워낙 열심히 배운 터라 현재 최 도주의 술기를 가장 잘 이어받은 전인으로 평가받는다. 홀쭉한 체구에 찬찬한 말투의 그는 흔히 이웃에서 볼 수 있는 할아버지로밖에 안보인다. 그런데 그에겐 엄청난 무술이 숨겨져 있었다. 최 도주는 총재에게 새로운 무술의 세계를 보여줬다. 손만 얽었다...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2010/11/03 http://www.mooye.net/3164 ▲ 국민생활체육충남합기도연합회 (회장 정달순) 합기도는 핵심술기의 원형을 보존하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러나 변형과 변화, 발전만을 치중한 나머지 보존은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충청남도 금산에 최용술 도주의 합기도 원형술기를 보존하고 후대로 계승하기 위해 도주의 이름을 따 지은 ‘용술관’을 개관하여 최용술 도주가 제1대, 최복열(최용술 도주 아들) 도주가 제2대, 김윤상 도주가 제3대를 맡으며 현재까지 그 계보를 이어오면서 원형술기를 보존하고 전수·계승하고 있다. 합기도는 계보를 따르는 역사성과 정통 핵심술기를 전수하는 가운데 술기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즉, 합기도의 원형보존과 발전이 전제조건으로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의미로 합기도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용술 도주가 만든 원형술기의 구조를 보면 현재 재정립된 술기구조와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볼 수 있다. 현재의 술기가 분명 현대화·체계화되었으나 원형술기에 비해 잘 풀리지 않는 수가 너무 많다. 한 예로 던지기 기법을 살펴보면 합기도 고유의 던지기가 아닌 유도의 던지기 기술이 도입되어, 유도를 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합기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명백한 발전의 오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합기도는 대한체육회 가맹과 함께 합기도의 계보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합기도를 바로 세우고 원로 분들을 선배로써 깍듯이 대우하기 위해 ○○특별위원회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합기도 계보를 바로 잡고 합기도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사람을 공개 토론을 통해 검증하여 옥석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시기가 아주 적절하다. 대의명분도 충분하다. 이제 합기도의...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고수를 찾아서 <24>김윤상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 도주 "죽을 때가 돼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 무술" 해방 뒤 우리나라 합기도 개척한 최용술 도주 수제자 고희 넘긴 나이에도 도복 벗지 않고 영원한 현역 고집 "싸우지 않고 상대방 이기는 방법 알아야 진짜 무도인"https://youtu.be/k8D08ekrELU 최용술(1899~198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홉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절에서 살다 근대 일본 유술의 최고수라 일컬어지는 다케다 소가쿠라는 무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서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운다. 다케다는 최용술에게 "합기유술은 원래 신라시대 때 화랑인 삼랑 원의광이 도일하면서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그런 만큼 너는 너희 나라로 가서 이 술기를 전파시켜라"는 부탁을 한다. 해방 이후 귀국한 최용술은 대한합기유권술 도장을 열고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나선다. 그의 무술은 놀라운 것이었다. 어떤 상대도 대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이라도 최용술의 손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했다. 쓰러진 상대방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시범을 선보이는 김윤상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 도주.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몸놀림이 빨랐다. 서순룡 기자 seosy@kookje.co.kr· 최용술은 사실상 우리나라 합기도의 창시자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실력에 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스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데다 그에게서 술기를 배운 제자들도 철저하게 외면했다. 넘기 어려운 거대한 산이었던 최용술. 그가 있는 한 제자들은 감히 자신이 최고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최용술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하기 시작한다. 한국과 일본의 무술사학자들에 의해서다....
합기유술 총본부ㅣ용술관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