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를 사용해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대한민국 무예문화 유산

1대 합기도 도주님

합기를 사용해 상대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대한민국 무예문화 유산

1대 합기도 도주님

1대 합기도 도주님 최용술(1899년 7월생)

 

최용술 도주님은 음력 1899년 7월 21일 충북황간(영동군 황간면 광평리 150번지)에서 출생하셨습니다.

도주님이 9세때 일본인인 山田大吉씨 부부(제조업관련으로 조선에 와있었음)를 만나 일본으로 출국하게 되었고
도착 후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연으로 山本秀雄(무사이면서 승려)을 만나 기초적인 무술수양을 쌓게 됩니다.

그는 최용술도주님을 (요시다아사오)吉田朝男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여 불렀으며 약 4년을 지내게 되었는데
당시 전국을 순회하면서 무술수업을 하던 다케다소가쿠선생이 최용술도주님이 거주하던 절에 들렀던차,
山本秀雄의 간절한 부탁으로 武田선생의 내제자가 됩니다.(당시 선생의 나이 14세 1913년) 이후 1917년까지 3년동안 다케다선생과
함께 일본 전역을 순회하였으며 이 시기에 현 일본 아이기도 창시자인 植芝盛平(우에시바 모리헤이)를 1915년 홋카이도 욱천(아사히카와)에서 처음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순행을 마친 다케다 소가쿠와 최용술도주님은 다른 4명의 제자와 함께 다케다가문의 전통적인 수행장소인 瑞牆山에 입산,
산악 암굴에서 6년간 기거하며 하산하기까지 최후에는 다케다 선생과 단둘이 남아 대동류의 진전을 이어 받으셨습니다.
이후 다케다쇼가쿠 선생과 함께 하산하여 해방후 1946년 귀국하시기 전까지 한결같이 다케다쇼가쿠선생을 부모님처럼 따르며 수제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황실의 황족과 귀족, 관련 특수요원들을 지도한 것과 북해도의 간척단 지휘, 관동 대지진(1923년 9월)때 조선인 아녀자를 구출하는 등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주님은 해방후 스승의 유지대로 한국으로 귀국하였고 1986년 10월 27일 지병으로 작고 하시기까지 한국의 현대 무술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셨습니다.

도주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무술에만 전념하시어 후대에 남긴 관련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연유로 합기도 창시자 이심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합기도분야에서는 그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몇몇 국내외 무술사학자들 및 무술전문가들이 당시 일본행적을 수집하는 등 최용술도주님의
흔적을 추적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으며 용술관에서는 그분의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대 합기도 도주님 최용술(1899년 7월생)

 

최용술 도주님은 음력 1899년 7월 21일 충북황간(영동군 황간면 광평리 150번지)에서 출생하셨습니다.

도주님이 9세때 일본인인 山田大吉씨 부부(제조업관련으로 조선에 와있었음)를 만나 일본으로 출국하게 되었고
도착 후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연으로 山本秀雄(무사이면서 승려)을 만나 기초적인 무술수양을 쌓게 됩니다.

그는 최용술도주님을 (요시다아사오)吉田朝男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여 불렀으며 약 4년을 지내게 되었는데
당시 전국을 순회하면서 무술수업을 하던 다케다소가쿠선생이 최용술도주님이 거주하던 절에 들렀던차,
山本秀雄의 간절한 부탁으로 武田선생의 내제자가 됩니다.(당시 선생의 나이 14세 1913년) 이후 1917년까지 3년동안 다케다선생과
함께 일본 전역을 순회하였으며 이 시기에 현 일본 아이기도 창시자인 植芝盛平(우에시바 모리헤이)를 1915년 홋카이도 욱천(아사히카와)에서 처음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순행을 마친 다케다 소가쿠와 최용술도주님은 다른 4명의 제자와 함께 다케다가문의 전통적인 수행장소인 瑞牆山에 입산,
산악 암굴에서 6년간 기거하며 하산하기까지 최후에는 다케다 선생과 단둘이 남아 대동류의 진전을 이어 받으셨습니다.
이후 다케다쇼가쿠 선생과 함께 하산하여 해방후 1946년 귀국하시기 전까지 한결같이 다케다쇼가쿠선생을 부모님처럼 따르며 수제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황실의 황족과 귀족, 관련 특수요원들을 지도한 것과 북해도의 간척단 지휘, 관동 대지진(1923년 9월)때 조선인 아녀자를 구출하는 등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주님은 해방후 스승의 유지대로 한국으로 귀국하였고 1986년 10월 27일 지병으로 작고 하시기까지 한국의 현대 무술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셨습니다.

도주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무술에만 전념하시어 후대에 남긴 관련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연유로 합기도 창시자 이심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합기도분야에서는 그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몇몇 국내외 무술사학자들 및 무술전문가들이 당시 일본행적을 수집하는 등 최용술도주님의
흔적을 추적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으며 용술관에서는 그분의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용술관’ 관명은 특허청에 상표등록되어 있으며 타 도장에서 무단 도용시 법에 저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