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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최용술도주님 17주기 추모식

작성자
합기유술총본부
작성일
2022-09-05 15:07
조회
69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국화 한송이
- 故 덕암 최용술 옹 17주기 추도식 (2003/11/25)


故 덕암 최용술 옹은 1899년 황간 태생으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가서 30년간 다케다 소오가쿠 아래에서 다이토오류 아이키주즈츠(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련하고 1946년 귀국, 대한합기유권술이란 명칭으로 자신이 수련한 무술을 전파했다. 그는 1968년 제자들에 의해 초대 대한민국 합기도 도주로 추대되었으나 이후 합기도의 유명세에 비해 세상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채 말년에 소수의 제자들만 양성하시다가 1986년 쓸쓸히 소천하신 분이다.

인터넷에 의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몇몇 제자들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덕분에 지금에야 덕암 선생의 존재를 아는 이가 많아졌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오랜 기간 합기도를 수련하면서도 우리나라 합기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또 지금도 그 분의 기술과 적통에 대한 부분에만 논쟁이 주로 집중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줄 뿐이다.

지난 11월 16일 11시 덕암 선생과 부인이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 대구 칠곡 현대공원묘지에서는 용술관 김윤상 합기유술 총재(현 대한민국 합기도 3대 도주)를 비롯한 제자들이 모여 17주기 추도식을 가졌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이 날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가한 사람들

17년 간 지켜온 약속
이 날 행사는 말년 제자 중 13년간 최용술 옹에게 지도를 받았던 김윤상 3대 도주와 대구 종가 최태영(최용술 옹의 손자)이 주관하였으며, 용술관 대전 용문도장 관원 허진의 사회로 최용술 초대 도주에 대한 묵념, 그리고 김윤상 도주의 추모사, 분향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윤상 도주는 추모사에서 “나 죽으면 국화 한송이들고 찾아오라 하셨던 최용술 도주님의 유언에 따라 17년간 매년 묘소를 찾아 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17년 전의 약속을 지켜오고 있는 김윤상 도주



분향은 김윤상 도주, 70년대 최용술 옹과 가까이 대구에서 수련했던 노제자들, 용술관에서 최용술 옹과 함께 수련했던 노사범들, 관장들, 관원들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30여명의 용술관 관원들이 참석, 고인의 유업을 기렸다.

김윤상 도주는 내년부터는 미리 공지를 하여 용술관만의 행사가 아니라 국내 합기도인들이 함께 하는 추모행사를 가지는 것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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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최용술도주님 17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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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유술총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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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국화 한송이
- 故 덕암 최용술 옹 17주기 추도식 (2003/11/25)


故 덕암 최용술 옹은 1899년 황간 태생으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가서 30년간 다케다 소오가쿠 아래에서 다이토오류 아이키주즈츠(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련하고 1946년 귀국, 대한합기유권술이란 명칭으로 자신이 수련한 무술을 전파했다. 그는 1968년 제자들에 의해 초대 대한민국 합기도 도주로 추대되었으나 이후 합기도의 유명세에 비해 세상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채 말년에 소수의 제자들만 양성하시다가 1986년 쓸쓸히 소천하신 분이다.

인터넷에 의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몇몇 제자들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덕분에 지금에야 덕암 선생의 존재를 아는 이가 많아졌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오랜 기간 합기도를 수련하면서도 우리나라 합기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또 지금도 그 분의 기술과 적통에 대한 부분에만 논쟁이 주로 집중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줄 뿐이다.

지난 11월 16일 11시 덕암 선생과 부인이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 대구 칠곡 현대공원묘지에서는 용술관 김윤상 합기유술 총재(현 대한민국 합기도 3대 도주)를 비롯한 제자들이 모여 17주기 추도식을 가졌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이 날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가한 사람들

17년 간 지켜온 약속
이 날 행사는 말년 제자 중 13년간 최용술 옹에게 지도를 받았던 김윤상 3대 도주와 대구 종가 최태영(최용술 옹의 손자)이 주관하였으며, 용술관 대전 용문도장 관원 허진의 사회로 최용술 초대 도주에 대한 묵념, 그리고 김윤상 도주의 추모사, 분향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윤상 도주는 추모사에서 “나 죽으면 국화 한송이들고 찾아오라 하셨던 최용술 도주님의 유언에 따라 17년간 매년 묘소를 찾아 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17년 전의 약속을 지켜오고 있는 김윤상 도주



분향은 김윤상 도주, 70년대 최용술 옹과 가까이 대구에서 수련했던 노제자들, 용술관에서 최용술 옹과 함께 수련했던 노사범들, 관장들, 관원들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30여명의 용술관 관원들이 참석, 고인의 유업을 기렸다.

김윤상 도주는 내년부터는 미리 공지를 하여 용술관만의 행사가 아니라 국내 합기도인들이 함께 하는 추모행사를 가지는 것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