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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총본부 용술관 보도자료

[2018.10 무예신문] 최용술 선생 영명록 발견, 일본서 배운 건 사실이다

작성자
합기유술총본부
작성일
2022-12-02 16:17
조회
75
최용술 선생 영명록 발견, 일본서 배운 건 사실이다
기사입력: 2018/10/15 [22:44] 

©무예신문
 

필자는 수미노사토시(住野聡) 한국명 성도원(誠道苑)이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선문대학교 무도학과를 졸업한 후, 용인대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사논문에서 발표하겠지만, 박사논문을 위해 조사했던 일부내용을 대한민국 무예계를 대표하는 무예신문에 일부를 먼저 발표한다.

 

한국에서 무예를 공부하다 보니 한국 합기도는 최용술 선생이 타게다 소우가쿠로 부터 직접 술기를 배워온 것으로 발표됐지만 영명록이 발견되지 않은 관계로 이에 대한 설이 분분했다. 이에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하고 수년 동안 영명록 추적에 나섰다.

 

지난 9월 21일 필자는 일본 동경에 있는 다이토우류아이키주찌츠(大東流合氣柔術:대동류합기유술) 본부도장에 갔다. 목적은 한국 합기도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최용술(崔龍述:1899~1986) 선생에 관한 연구조사를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최용술 선생은 대동류의 타케다 소우카쿠(武田惣角)한테서 무술을 배웠다고 주장해왔는데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증거라는 영명록(英名錄)이다.

 
 ©무예신문
 

이것은 타케다 소우카쿠가 언제 누구한테 무술지도를 받았는지 세밀히 기록한 자료다. 사실 영명록은 여러 종류가 있다. 타케다 소우카쿠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영명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타케 다소우카쿠의 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도 영명록 이름을 사용해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케다 소우카쿠에 영명록이다. 최용술 선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름은 거기에 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났던 사람은 종가대리(宗家代理)로서 활동해 왔던 콘도카츠유키(近藤勝之)본부장이다. 그분은 실제적인 제3대의 후계자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타케다 소우카쿠의 영명록과 기타자료들도 보관하고 있다. 필자는 그분과의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최용술 선생의 영명록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접근할 수 없었다. 필자는 다행히 기회를 얻었다. 영명록에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다.

 

핵심은 최용술 선생의 기록이 영명록에 있다는 사실이다. 기록에 따르면 최용술 선생은 북해도 오타루시(北海道小樽市)에 거주해 있었고, 수련기간은 타케다 소우카쿠으로 부터 10일씩 두 번에 걸쳐 20일 동안 수강했다. 또한 영명록과 같이 있는 사례록(謝礼錄)에 20일수에 맞은 사례금 60엔(1회 30엔)을 지불했던 내용까지 있다.

 
▲ 세계평화무도연합 성도원 사무총장©무예신문
지금까지 ‘최용술 선생이 타케다 소우카쿠로부터 배웠다는 것이 거짓말이다’라는 주장이 학계에 있었지만 이번 영명록의 발견으로 다케다 소우카쿠에서 수련한 것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大東武(대동무)에 기록된 내용처럼 다케다 소우카쿠와 함께 유랑을 하고, 장기간 수련하지는 않은 것 또한 밝혀졌다.

 

대동류유술의 원리는 검에서 나온 것으로 최용술 선생에 전래된 한국 합기도에 대동류유술의 검의 기법이 없는 것만 보더라도 장기간 수련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이런 연유로 비전목록과 같은 수련증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자세한 기록은 추후 박사논문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무예신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도원 사무총장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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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합기도 합기유술

총본부 용술관 보도자료

[2018.10 무예신문] 최용술 선생 영명록 발견, 일본서 배운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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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유술총본부
작성일
2022-12-02 16:17
조회
75
최용술 선생 영명록 발견, 일본서 배운 건 사실이다
기사입력: 2018/10/15 [22:44] 

©무예신문
 

필자는 수미노사토시(住野聡) 한국명 성도원(誠道苑)이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선문대학교 무도학과를 졸업한 후, 용인대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사논문에서 발표하겠지만, 박사논문을 위해 조사했던 일부내용을 대한민국 무예계를 대표하는 무예신문에 일부를 먼저 발표한다.

 

한국에서 무예를 공부하다 보니 한국 합기도는 최용술 선생이 타게다 소우가쿠로 부터 직접 술기를 배워온 것으로 발표됐지만 영명록이 발견되지 않은 관계로 이에 대한 설이 분분했다. 이에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하고 수년 동안 영명록 추적에 나섰다.

 

지난 9월 21일 필자는 일본 동경에 있는 다이토우류아이키주찌츠(大東流合氣柔術:대동류합기유술) 본부도장에 갔다. 목적은 한국 합기도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최용술(崔龍述:1899~1986) 선생에 관한 연구조사를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최용술 선생은 대동류의 타케다 소우카쿠(武田惣角)한테서 무술을 배웠다고 주장해왔는데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증거라는 영명록(英名錄)이다.

 
 ©무예신문
 

이것은 타케다 소우카쿠가 언제 누구한테 무술지도를 받았는지 세밀히 기록한 자료다. 사실 영명록은 여러 종류가 있다. 타케다 소우카쿠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영명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타케 다소우카쿠의 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도 영명록 이름을 사용해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케다 소우카쿠에 영명록이다. 최용술 선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름은 거기에 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났던 사람은 종가대리(宗家代理)로서 활동해 왔던 콘도카츠유키(近藤勝之)본부장이다. 그분은 실제적인 제3대의 후계자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타케다 소우카쿠의 영명록과 기타자료들도 보관하고 있다. 필자는 그분과의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최용술 선생의 영명록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접근할 수 없었다. 필자는 다행히 기회를 얻었다. 영명록에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다.

 

핵심은 최용술 선생의 기록이 영명록에 있다는 사실이다. 기록에 따르면 최용술 선생은 북해도 오타루시(北海道小樽市)에 거주해 있었고, 수련기간은 타케다 소우카쿠으로 부터 10일씩 두 번에 걸쳐 20일 동안 수강했다. 또한 영명록과 같이 있는 사례록(謝礼錄)에 20일수에 맞은 사례금 60엔(1회 30엔)을 지불했던 내용까지 있다.

 
▲ 세계평화무도연합 성도원 사무총장©무예신문
지금까지 ‘최용술 선생이 타케다 소우카쿠로부터 배웠다는 것이 거짓말이다’라는 주장이 학계에 있었지만 이번 영명록의 발견으로 다케다 소우카쿠에서 수련한 것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大東武(대동무)에 기록된 내용처럼 다케다 소우카쿠와 함께 유랑을 하고, 장기간 수련하지는 않은 것 또한 밝혀졌다.

 

대동류유술의 원리는 검에서 나온 것으로 최용술 선생에 전래된 한국 합기도에 대동류유술의 검의 기법이 없는 것만 보더라도 장기간 수련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이런 연유로 비전목록과 같은 수련증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자세한 기록은 추후 박사논문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무예신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도원 사무총장

용술관에서는 그분 술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1980년 7월 26일 최용술도주님은 도장명(道場名)을 자신의 함자에서 한자만 달리하여
용술관으로 명명(命名) 하시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인 명명서를 남기셨습니다.